본문 바로가기

도움되는 정보/about 과학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

요하네스 케플러 / 출처: public domain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1571년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소년 시절에 시골 마을에 있는 마울 브론 개신교 신학교에 들어가 성직자가 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신학교는 가톨릭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첨병으로 쓰기 위해 어린 학생들의 정신을 신학적 무기로 훈련시키는 일종의 신병 훈련소와 같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케플러는 고집이 세고 두뇌가 명석했으며 독립심이 무척 강한 소년이었는데, 성격이 그러하니 황량한 시골마을에서 2년 동안 아주 외롭게 그리고 힘겹게 보내야만 했습니다. 남과 어울리는 일도 적었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으로 점차 변해 갔습니다. 그는 신이 보시기에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가에 대해 온 정신을 쏟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지르는 사소한 죄들을 하나하나 수천 가지씩 회개하면서 자신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하리라는 절망 속에서 신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어린 소년이었던 케플러는 외로운 생활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호기심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세상의 종말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세상의 종말에 대한 탐구는 케플러의 일생일대의 목표가 되어 있었습니다. 케플러는 신학교에서 신학, 그리스 어, 라틴어, 음악, 수학을 공부했는데 이 중에서도 수학이 주는 기쁨을 즐기며 생활을 했습니다. 

1589년 케플러는 성직 공부를 더하기 위해 마울브론을 떠나 튀빙겐으로 갔습니다. 튀빙겐 대학교에서 케플러는 사고의 자유와 해방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케플러를 맞이한 것은 그 시대에 가장 약동적인 지식의 도도한 흐름이었고, 그의 천재성은 즉시 교수들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 한 교수가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에 내포된 위험한 신비를 케플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태양 중심의 우주관은 케플러의 종교관과 공명하였기에 그는 이 가설을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태양은 신의 상징이었고 만물은 그 주위를 돌아 마땅했습니다. 공부를 끝내고 목사 임명을 받기 전에 그에게 썩 좋은 세속 직장이 하나 나타났는데 자신이 성직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탓인지 케플러는 그 자리를 선뜻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로 가서 목사 대신 중등학교의 수학 교사가 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는 천문과 기상 현상에 관한 것을 제작하여 별점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신께서 모든 동물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주셨듯이 천문학자에게는 점성학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가 남긴 문장입니다.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로부터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케플러 이전까지 살던 기독교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모두 원이 '완벽'한 기하학적 도형이므로, 행성들은 마땅히 원 궤도를 따라 돌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케플러도 지구와 화성이 태양 주위를 원 궤도를 따라 돈다고 간주하고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케플러는 3년에 걸친 긴 분석 끝에 화성의 원형 궤도에 해당하는 정확한 수치를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곧 큰 오차를 발견한 후 결국 원에 대한 동경이 하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케플러가 보기에 지구는, 전쟁과 질병 그리고 굶주림과 온갖 불행으로부터 망가진, 확실히 완벽과는 아주 상반된 존재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케플러는 고대 이후로 행성이 지구처럼 불완전한 것들로 구성된 물체라고 이야기한 몇 안 되는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케플러는 화성이 태양 주위를 공전할 때 원 궤도가 아니라 타원 궤도를 따라 돈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다른 행성들의 궤도도 타원이기는 하지만 화성의 궤도보다 훨씬 더 원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양은 타원 궤도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조금 비껴나간 초점에 자리하는데,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행성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행성이 태양에서 가장 먼 곳에 이르렀을 때 궤도 속도가 가장 느려집니다. 이러한 운동 때문에 행성이 태양을 향해 떨어지는 중이지만, 절대로 태양으로 곤두박질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행성 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 3가지

제1 법칙, 행성은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태양은 그 타원의 초점에 있다. 

제2 법칙,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은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넓이를 휩쓴다. 

제3 법칙, 행성의 주기(행성이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를 제곱한 것은 행성과 태양 사이의 평균 거리를 세제곱 한 것에 비례한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일수록 더 천천히 움직이되, 그 관계가 수학 공식 P2=a3을 정확히 따른다. 

 

이러한 행성 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은 자연현상으로부터 직접 찾아낸 경험 법칙이었습니다. 케플러는 법칙을 자연에서 발견해 낼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더 근본적인 행성 운동의 원인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행성이 태양에 가까워질수록 공전 운동 속도가 빨라지고 또 멀리 떨어질수록 속도가 느려집니다. 태양과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들은 자신이 태양에 접근 또는 후퇴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내는 것일까요? 행성이 태양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는 모종의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케플러는 행성 운동의 근본 원인이 자기력의 작용과 유사한 성격의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중력 또는 만유인력의 개념을 예견했던 것이었습니다. 

케플러는 지구에 적용되는 측정 가능한 물리 법칙이 천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측정 가능하다는 것은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의 생각으로 인해 인류사에서 최초로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는 데에서 신비주의가 배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케플러는 역사의 한 꼭짓점에 서서 "천문학은 물리학의 일부다." 라고 단언했으며 인류사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과학적 점성술사가 우리가 만난 최초의 천체물리학자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