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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되는 정보/about 과학

'이오니아'에서 태어난 과학

인류 사상사에서 위대한 혁명이 기원전 600년과 400년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혁명의 열쇠는 손이었습니다. 이오니아의 뛰어난 사상가들 중에는 항해사, 농부, 직조공의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손을 써서 물건을 주무르고 고치고 만드는 일에 익숙했지요. 다른 나라의 사제들이나 서기들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치 속에 자라서 손을 더럽히기를 싫어했지만, 이오니아 인들은 그 근본부터 그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은 미신을 배척하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들을 해냈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그 당시 이오니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단편적이거나 간접적인 이야기를 통해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사용된 은유가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라 이오니아에서 벌어진 일들을 명료하게 알기 힘듭니다. 게다가 몇 세기 지나지 않아 이오니아에서 탄생한 새로운 통찰을 억압하려는 조직적인 시도 시작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는 이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의 주인공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어떻든 혁명적 사고의 주인공들은 오늘날 우리 대부분에게는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는 그리스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인류의 문명과 인간 정신 발달에 진정한 기여를 한 위대한 개척자들이었습니다. 

이오니아의 첫 번째 과학자 '탈레스'

이오니아의 첫 번째 과학자는 밀레투스의 '탈레스'라는 과학자였습니다. 밀레투스는 좁은 해협을 두고 사모스 섬 건너편에 있는 아시아의 한 도시입니다. 탈레스는 이집트를 두루 여행했고 바빌로니아의 지식에도 정통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탈레스는 일식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피라미드 그림자의 길이와 수평선 위에 떠오른 태양의 고도를 이용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쟀습니다. 오늘날에도 달 표면에 있는 산들의 높이를 잴 때 똑같은 방법을 쓴다고 하네요. 3세기 후 유클리드 라는 사람이 정리의 형식으로 기술한 기하학의 여러 성질들을 탈레스가 이미 증명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탈레스는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유클리드보다 먼저 증명한 인물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이 같다는 정리들인데, 따지고 보면 탈레스는 유클리드로 연결되고, 유클리드는 아이작 뉴턴으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뉴턴은 1663년 스투어브리지 박람회에서 구입한 책 중에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스투어브리지에서 산 책이 뉴턴과 탈레스를 이어 주고 결국 현대 과학 기술을 탄생시킨 중대한 계기를 낳게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류의 지적 노력의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탈레스, 유클리드, 뉴턴의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탈레스는 신들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입니다. 바빌로니아 인들처럼 그도 세상이 한때 물이었다고 믿었습니다. 바빌로니아 인들은 마른땅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두크가 물 위에 명석을 깔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놓았다는 식의 설명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탈레스도 세상이 물이었다는 점에 관해서는 바빌로니아 인들과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벤저민 패링턴의 표현에 의하면 탈레스는 '마르두크의 이야기는 빼고' 세상을 설명하려 했다고 합니다. 모든 것들이 한때는 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구의 바다로부터, 마르두크의 개입이 아니라 자연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었습니다. 탈레스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상류에서 흘러 내려온 흙과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나일 강 하구의 삼각주를 본 적이 있던 탈레스가 생각한 자연과정은 삼각주의 형성 과정과 비슷한 게 아니었을까요? 물론, 탈레스는 물이 모든 물질의 근본을 이루는 공통의 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 쿼크에 근거해서 만물을 설명하듯이 말입니다. 탈레스가 내린 결론의 옳고 그름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점은 문제 해결을 위해 그가 택한 접근 방식에 있습니다. 

신들이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물리적 힘의 결과로 만물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야말로, 당시 사고의 근본을 뒤흔드는 발상의 대전환이었습니다. 탈레스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 이오니아로 가져온 천문학과 기하학 등의 새로운 씨앗이 그곳의 비옥한 토양 덕분에 튼실한 싹을 틔우고 과학으로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탈레스는 정치의 현인으로도 유명하다고 하는데요. 그는 밀레투스 사람들을 잘 설득하여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의 동화 정책에 저항하게 하는 데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연합 전선을 펴서 리디아에 저항하기 위해 이오니아의 모든 섬 국가들을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탈레스에 관한 일화 하나를 소개합니다. 

탈레스는 그의 가난 때문에 세인의 비아냥을 받았다. 그의 가난이 철학의 무용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천상의 비밀을 해석해 내는 출중한)능력과 기술을 이용하여, 겨울철에 그다음 해의 올리브가 대풍일 것을 미리 알았다고 한다. 밑천이 두둑하지 않던 그는 자기가 갖고 있던 얼마 안 되는 돈을 들여 키오스와 밀레투스에 있는 올리브 기름틀의 사용권을 모두 예약해 두었다. 아직 올리브의 수확철이 아니어서 기름틀을 사용하겠다고 그와 경합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그는 매우 싼값으로 모든 기름틀의 사용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수확기가 다가오자 기름틀을 찾는 이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한마디로 기름틀의 사용료를 멋대로 올려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철학자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들의 관심은 돈이 아니라 다른 것에 있다는 점도 세상 사람들에게 가르쳐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