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움되는 정보/about 과학

모든 생물의 유전 물질 'DNA'

고래 한 마리가 일생을 살아가려면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항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지식이 모두 고래의 유전자와 두뇌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전자에 담기는 정보는 플랑크톤을 지방질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1킬로미터 깊이로 잠수하면서 숨을 참는 방법 같은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뇌에 저장되는 정보는 '나의 어머니가 누구 인가?'라든가 '지금 내가 듣고 있는 노래는 어떤 의미인가?'와 같은 습득된 지식입니다. 고래도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모든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유전자와 두뇌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유전자처럼 고래의 유전자들도 모두 핵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핵산은 아주 특별한 분자로서 자기 주위에 있는 화학적 기본 재료를 사용하여 자기 자신을 스스로 복제할 뿐 아니라 유전적 정보를 발현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고래가 내는 효소 중에는 헥소키나아제라고 불리는 분자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에도 똑같은 효소가 들어 있습니다. 당분을 에너지로 변화시키려면 모두 스물대여섯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각 단계마다 효소의 중재를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긴 과정의 첫 단계에서 바로 헥소키나아제라는 이름의 효소가 중재 역할을 합니다. 고래가 낮은 주파수 대역의 노래 한 음절을 발성하는 데에는 미약한 양일 테지만 반드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 에너지를 고래가 자신의 주식인 플랑크톤에서 생산해 내는 일련의 긴 과정도 따지고 보면 헥소키나아제의 활약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핵산에는 DNA와 RNA라는 두 가지 유형이 있으며, 유전정보의 저장과 전달, 그리고 발현을 돕는 기능을 담당한다. 단백질의 형태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폴리펩티드의 일차 구조인 아미노산 서열은 유전자에 의해 설계되어 있다. 이런 유전자는 바로 DNA라는 핵산에 의해 구성된다. DNA의 유전 정보는 전사 과정에 의해 RNA라는 핵산으로 전환한다. 

 

DNA 이중 나선에 저장된 정보는 네 단어로 구성된 언어로 기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4개의 단어란 4종류의 서로 다른 핵산을 뜻합니다. 즉 DNA는 4종류의 핵산 분자로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지구 상 모든 생물에게 공통적으로 성립하는 사실입니다. 고래나 인간뿐 아니라 온갖 동식물의 유전 정보가 모두 단 한 종류의 언어로 기술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생물의 유전 물질에는 과연 몇 비트의 정보가 필요할까요? 쉽게 말해서, 한 가지 생물학적 질문을 생명의 언어인 핵산으로 구현하려면 과연 몇 개의 YES or NO 형태의 답이 필요한지 말입니다. 

바이러스 하나가 살아가는 데 대략 1만 비트의 정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정보는 단순하고 치밀할 뿐 아니라 매우 능률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정보를 제대로 읽어 내려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 정보는 결국 바이러스가 살아 남기 위한 행동 지침인데, 침입과 복제, 이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우선 다른 생물에 침입한 다음 자기 자신을 복제해야 합니다. 세균 한 마리, 즉 박테리아가 살아가는 데 대략 100만 비트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100만 비트라면 100쪽 분량의 책 한 권에 해당되는 정보량입니다. 박테리아는 바이러스보다 해야 하는 일의 종류가 훨씬 더 많습니다. 바이러스와 달리 박테리아는 전적으로 기생만 하는 생물이 아닙니다. 박테리아는 자신만의 삶을 꾸려 나갑니다. 단세포 생물이기는 하지만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아메바가 영위하는 삶은 박테리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합니다. 그 때문에 그들의 DNA에는 약 4억 비트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500쪽 분량의 책 80여 권에 해당하는 정보가 있어야 아메바를 하나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래나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정보는 약 50억 비트에 이릅니다. 각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는 정보를 영어로 기술한다면 약 1,000권에 이르는 책들을 높이 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보의 양으로만 따지면 세포 하나가 하나의 도서관인 셈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은 약 100조 개의 세포들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몸 어느 구석이든 그곳에 있는 세포 하나하나는 몸을 만드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소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의 세포는 우리 부모가 만든 단 하나의 수정란 세포가 연속적으로 분열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태아가 성장해서 태어날 때까지 수많은 단계의 세포 분열이 이뤄지지만 분열할 때마다 유전자의 설계도가 원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완벽하게 복제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간장 세포에는 실제로 쓰이지는 않지만 뼈를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도 들어 있습니다. 반대로 뼈세포에는 뼈를 만드는 데에는 직접 필요하지 않지만 간장 세포에 필요한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유전자 도서관은 우리 몸 구석구석이 각각 알고 있어야 할 정보를 이렇게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의 정보가 속속들이 빠짐없이 중복되어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웃는 방법, 재채기를 하는 기술, 효과적인 걷기 방안뿐 아니라, 패턴을 인식하는 방법, 후손을 생산하는 기술, 사과를 먹고 소화시키는 요령 등이 유전자에 모두 세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과의 당분을 소회 시키는 과정은 길고 복잡합니다. 화학의 언어로 기술한 복잡한 반응식도 그 과정의 처음 몇 단계를 표시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과 하나를 먹는 행위도 따지고 보면 사실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입니다. 소화 작용에 필요한 각종 효소들을 합성하는 일과 음식에서 에너지를 얻어내는 일련의 화학반응들을 인간이 의식적으로 하나하나 챙겨서 수행해야 한다면, 사람은 결국 굶어 죽고 말 것입니다. 그렇지만 박테리아 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도 산소가 없는 곳에서 당을 자동으로 분해할 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과 썩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박테리아나 인간이나, 이 양극단의 중간에 있는 다양한 단계의 모든 생물들은 유전자 정보의 지시를 수없이 공유합니다. 결국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도 공동의 조상에서 진화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현대 기술 문명은 기묘한 생화학 반응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만을 겨우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는 그 보든 화학반응을 전혀 힘들이지 않고 척척 수행해 냅니다. 생명은 수십억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화학반응에 대한 실습을 수없이 많이 해왔지만 인간은 이제 겨우 그 화학반응들을 연구하기 시작한 데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DNA야말로 그 모든 것을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도움되는 정보 > about 과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파 천문대  (0) 2020.04.24
인간의 뇌 '대뇌피질'  (0) 2020.04.23
지상 최대의 '전파 망원경'  (0) 2020.04.22
통증을 느끼는 감각 : 통각  (1) 2020.04.21
암흑의 '성간운'에서 태어나는 별  (1) 2020.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