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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되는 정보/about 과학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는 과학적 '모형'

의학분야에서 인체 모형을 활용하는 범위가 매우 넓습니다. 수 세기 전 중국의 상류계급에서는 귀부인들이 진찰을 받으러 갈 때 옷을 입히지 않은 상아 인형을 들려 보냈다고 합니다. 문화적인 금기와 정숙성을 나타내기 위해 남자 의사 앞에서 절대 옷을 벗을 수 없었던 그녀들은 걸 거 벗은 이형을 이용하여 아픈 부위와 증상을 설명했던 것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전통의사들은 작은 인형의 몸에다 침을 놓을 자리와 기타 의료정보를 표시했습니다.

 

서구에서 사용한 해부 모형의 용도는 이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절개하는 것이 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 허용되지 르네상스 전후 시기에는 상세한 해부학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일부 의사들은 다양한 해부 단계를 보여주는 정교한 실물 크기의 밀랍인형을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은 마담 터소의 밀랍 작품을 무색하게 할 만큼 정교하고 치밀했습니다. 그러나 인형들은 놓고 해부실습을 하는 것은 차후에 진짜 시신을 놓고 하는 것만큼 실감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절개한 개구리에서부터 사람의 해부도까지 컴퓨터로 처리된 모형들이 생물학과 의학교실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밀랍인형처럼 이런 시각화된 모형들 역시 적절한 집도법이나 순간적으로 엄청난 출혈이 발생하는 동맥 파열의 응급 봉합술을 실습하는 데에는 그다지 적절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대다수의 미술이나 과학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의학분야에서 보기만 하고 만지거나 손으로 다룰 수가 없는 모형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의학용 모형은 직접 조작이라는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 많습니다. 그 목록을 들여다보면 표상적이면서도 기능적인 모형들이 놀랄 정도로 다양하게 망라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떤 것들은 안에 작은 종양이 있는 유방을 달고 있는데, 그 느낌이 인체의 그것과 똑같아서 수련의들은 환자 없이도 얼마든지 실습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환자의 팔다리의 크기와 감촉까지 그대로 재현하고 있어서 주사 처치법을 배워야 하는 의대생들이나 당뇨환자들은 실제로 인체에 주사해보기 전에 이모형을 가지고 적절한 주사 절차와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편 질 모형은 산부인과 전공의들이 질 검사법을 배우는데 활용되며, 자궁 내 피임기구 설치법을 배우거나 내방환자에게 설명해주는 데도 쓰입니다. 심폐소생술 강의를 듣는 사람은 누구라도 인명구조법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되는 어린이 인형이나 성인 인형과 마주하게 됩니다. 의학용으로 사용되는 인형들은 진짜 사람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은 마네킹이나 로봇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마네킹이나 로봇이 용도에 부합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면 굳이 실물과 같은 모양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모형은 '추상'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미생물이나 벌레, 과실파리 등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서 인간의 유전적 특질들을 알아내는 것과 같습니다. 유전 법칙은 기본적으로 모든 유기체에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동물들을 통해 인간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시험관 안에 든 세포의 동태가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모형이 되기도 합니다.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1차 세계대전 동안 복합골절이나 파편으로 생긴 불규칙한 상처가 살균제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징이 박힌 것 같은 모양의 시험관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그는 박테리아가 징의 뾰족한 끝부분에 고립되면서 살균작용으로부터 '피신' 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모형 덕분에 플레밍은 아주 심하게 감염된 상처를 효과적으로 치료하려면 몸의 내부에서 치료작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이런 통찰로 알렌산더 플레밍은 1928년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플레밍은 신약의 효과를 시험관과 배양접시 안에서 연구해서 그것이 체내에서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알아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방식으로 신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실험합니다. 그러나 모든 모형은 추상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내장이나 간 같은 곳에서는 약의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약은 경구용으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간은 많은 화학물질을 변형시키기 때문에 약의 유익한 성분을 쓸모없게 만들거나 안전한 성분을 유해한 ㄴ성분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기니피그는 페니실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만 쥐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형의 한계를 아는 것은 그것의 적절한 용도를 아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의학은 또한 이론적 모형에도 의존하고 있습니다. 공중위생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해 고안해낸 진 짐펠의 것도 이 이론적 모형에 해당합니다. 기술사가인 짐펠은 중세의 기계 발명과 사용 방식을 재구성해보면서 모형 만들기에 관심을 키우게 됩니다. 그는 작은 작업용 모형을 만들어 그 당시 촌락사회에 적합한 기술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연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기술들이란 대규모로 산업화된 인프라가 아닌 소규모 가용 물자와 초보 과학을 활용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 연구를 통해서 짐펠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상당수가 문맹이었던 중세 사람들이 기술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고 기능적인 모형을 만들어 직접 접해보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방법은 그 자신이 역사에 등장하는 모형을 만들어 연구하는 방법과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모형을 활용해 공중위생을 가르치는 작은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